'16.02.24도서대출민폐

도서대출을 예약하고도 찾아가지 않는 사람으로 인한 피해

조선일보 발행일 : 2016.02.24 / 사회 A10 면 

지난 18일 서울시청 옆 서울도서관에는 점심때가 되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층 일반 자료실 입구 도서 대출 창구엔 20여 명이 네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곳곳에 놓인 검색용 PC는 빌릴 책을 검색하는 이용자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이날 정오부터 1시간 동안 도서관을 찾은 이용객은 200명이 넘었다.

하루 평균 7000여 명이 이용하는 서울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가려는 시민은 인터넷 홈페이지, 스마트폰 앱이나 전화 등을 통해 미리 도서 대출 예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을 빌리겠다고 예약을 해놓고 아무 연락 없이 찾아가지 않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지난 3년간 서울도서관의 도서 대출 현황을 조사해봤더니 전체 대출 예약자의 47.5%(12만6105건 중 5만9852건)가 '예약 부도(No-show·노쇼)'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대출 예약이 들어오면 도서관은 해당 책을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열람실에서 빼내 별도의 예약 서가에 따로 비치해 놓는다. 이후 예약한 사람에게 책을 찾아가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3일 안에 책을 찾아가지 않으면 예약이 취소된다. 예약 취소가 최종 확정될 때까지 예약 서가에 보관된 책들은 다른 이용자들이 열람하거나 빌릴 수 없다.

◇대출 노쇼로 서가에 처박힌 책 수두룩

서울도서관에서 지난해 대출 예약 부도율이 가장 높았던 책은 4년 전 출간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이 책은 지난해 총 101건의 대출 예약이 들어왔지만, 이 중 39건(38.6%)이 아무 연락도 없이 빌려가지 않은 경우였다. 사람이 많이 찾는 인기 도서이지만 정작 도서관에선 '노쇼' 때문에 1년 중 3분의 1에 달하는 기간 동안 예약 서가에 처박혀 있었던 셈이다. 이렇다 보니 이 책을 정말 빌리려는 다른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서울도서관 사서(司書) 이현희(여·48)씨는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는 예약이 항상 밀려 있는데 그만큼 노쇼 비율이 높다"며 "길게는 두세 달 동안 연속으로 예약 서가에 머무는 책도 적지 않은 탓에 '왜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데 책을 빌릴 수 없느냐'는 항의가 하루에도 5~6건 들어온다"고 했다.

대학생 백상현(27)씨는 "홈페이지에서 신간 도서 목록을 보고 도서관을 찾았지만 정작 열람실에선 찾아볼 수 없는 책이 너무 많아 의아했는데 그게 바로 노쇼 때문이었다니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인기 있는 책을 빌리기 위해 여러 도서관에 중복 예약을 한 뒤 대출이 확정된 곳에서 책을 빌리고는 나머지 도서관 예약은 '나 몰라라' 하는 노쇼 이용객도 많다. 서울의 한 공공도서관 관계자는 "예약 부도율이 높은 책들은 별도 예산을 들여 2~3권씩 더 구매하기도 한다"며 "노쇼를 일삼는 고객들의 '블랙리스트'라도 작성해 도서관끼리 공유하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도서 예약 부도율, 페널티 유무가 갈라

도서 대출 예약 부도율은 이용 제한 등 벌칙이 있느냐에 따라 크게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간의 예약 부도율이 47.5%에 달하는 서울도서관은 대출 예약을 마음대로 깨도 도서관 이용에 아무 제한이 없다. 이용 제한을 하려 해도 '세금으로 운영하는 시설인데 왜 이용을 금지하느냐'는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종로구의 종로도서관은 지난 2013년 7월부터 한 달에 3번 이상 대출 예약을 멋대로 깨는 이용객에겐 30일 동안 도서 대출을 금지하고 있다. 종로도서관의 지난해 노쇼율은 16.8% (예약 1만1738건 중 1977건)로 노쇼에 따른 벌칙이 없는 서울도서관의 3분의 1 수준이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도서 대출 같은 '공공(公共)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노쇼에 상응하는 벌칙을 부과해 다른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출처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16&M=02&D=24&ID=2016022400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