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26봉사활동도노쇼

봉사활동도 노쇼 골치

조선일보. 발행일 : 2016.03.26 / 사회 A8 면

지난해 10월 4일 오전 7시 경기 안산시 와스타디움. '2015 안산희망마라톤대회' 개막을 준비하던 안산 지역 자원봉사센터 직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두 시간 뒤면 마라톤이 시작되는데, 자원봉사 지원자 800명 중 200여 명이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1만명이 넘는 마라톤 참가자와 관중을 안내하고 행사 진행을 돕는 역할을 맡기로 했었다.

센터 측은 지원서에 적힌 휴대폰 번호로 연락했지만 대부분 전화기를 꺼놨거나 받지 않았다.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봉사 인원이 턱없이 모자라 하루 종일 밥도 못 먹었다"며 "행사 때마다 어김없이 지원자들의 10~20%는 나타나지 않아 곤욕을 치르곤 한다"고 했다.

◇자원봉사 노쇼에 활동 무산되기도

예약을 해놓고 통보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노쇼(No-show·예약 부도)'는 음식점이나 병원 등 서비스 업종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거나 공익 목적의 행사를 지원하는 자원봉사 활동에도 예약 부도가 일상화돼 있다.

본지가 서울 지역 자원봉사단체 1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작년 한 해 자원봉사를 신청해놓고 연락 없이 나오지 않은 예약 부도 비율이 15%에 달했다. 이 단체들의 상당수는 자원봉사자 모집 당시에는 경쟁률이 2~3대1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고 했다. 독거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한 단체 관계자는 "신청 인원의 절반 이상이 나오지 않아 활동 자체가 진행되지 못할 때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말 서울 관악구의 한 단체는 저소득층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부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위해 지역 고등학생들을 모집했다. 일주일 만에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정원(20명)의 5배를 넘는 100여 명이 지원했다. 하지만 정작 당일엔 고작 7명이 왔다. 오지 않은 13명에게 전화했지만 대부분 연락을 받지 않았다. 결국 이날 이 단체 사무실을 찾아온 초등학생 일부는 그냥 돌아갔고, 남은 학생들도 일대일 학습 대신 두세 명씩 짝을 이뤄 수업을 받았다. 이 단체 관계자는 "'활동 참가가 어려우면 최소 2~3일 전에 알려 달라'고 미리 안내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면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는 이들이 많아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10% 더 뽑는 오버 부킹해야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라남도와 진도군, 안산시 자원봉사센터 등은 "피해자 가족을 돕겠다"고 전국서 신청한 사람들을 안산시에 집결시켜 셔틀버스 편으로 한 번에 20여 명씩 현지에 내려보냈다. 사고 현장에서 24시간 자원봉사를 한 뒤 돌아오는 '무박(無泊) 2일' 자원봉사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자원봉사를 신청한 이들 중 상당수가 오지 않았다. 20명 중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아 진도군청 직원들이 봉사활동에 투입된 적도 있었다. 세월호 현장 자원봉사 관계자는 "참사 기간에 봉사활동 노쇼가 일어날 때마다 다른 봉사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봉사 기관이나 단체들은 예약 부도를 막기 위해 신청자들을 미리 소집하고 "당일에 꼭 와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럼에도 예약 부도율이 줄지 않아 최근에는 '10% 오버 부킹(초과 예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쇼'를 감안해 원래 모집 인원보다 10%는 더 뽑는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봉사단체 관계자는 "자원봉사는 '노쇼'를 해도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출처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16&M=03&D=26&ID=201603260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