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11대리운전노쇼

대리운전 불러놓고 연락두절, 생계 위협받는 대리운전기사

대리운전 달려갔더니 연락두절… 그들에게 노쇼는 '생존 위협'


조선일보 발행일 : 2016.01.11 / 종합 A8 면 

지난달 22일 새벽 2시 서울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영하의 날씨 속에서 대리운전기사 김모(42)씨는 대리운전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이 켜진 스마트폰 2개를 번갈아 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5분 뒤 스마트폰 하나에서 '띵똥' 소리와 함께 서초구에서 강서구로 가는 2만5000원짜리 대리요청(콜)이 뜨자 김씨는 재빠르게 '확정' 버튼을 눌렀다. '빨리 와달라'는 손님의 성화에 김씨는 택시를 잡아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택시요금으로 7000원을 내고 10분 만에 도착해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수차례 전화를 건 끝에 간신히 연락이 닿은 손님은 술에 잔뜩 취해 "친구랑 한잔 더 하기로 했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라는 김씨의 말에 손님은 "당신이 택시 탄 걸 왜 손님에게 따지느냐"고 소리치며 전화를 끊었다.

◇월수입 150만원에 '노쇼'는 악몽

본지는 서울 지역의 대리운전기사 15명에게 대리운전을 요청해놓고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는 '노쇼(No-show·예약 부도)'를 얼마나 경험했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기사 1명당 하루에 평균 6명의 손님 차를 대신 운전해주는데 1명(17%) 정도의 노쇼 고객과 맞닥뜨린다고 응답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국의 대리운전기사는 8만7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심야에 하루 평균 8시간, 한 달에 192시간(24일)을 일하고 월 200만원 정도를 번다. 하지만 회사에 내는 수수료와 3만~7만원의 대리운전 전용 앱 사용료, 10만~12만원에 달하는 보험료를 제하면 손에 쥐는 건 150만원이라는 게 대리기사들의 이야기다.

이런 대리기사들에게 '노쇼' 손님은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나 다름없다. 대리비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손님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쓴 교통비도 날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쇼 손님 때문에 시간을 허송하면서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한 손해까지 더하면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송년회나 신년회가 몰리는 연말연시에는 수도권 지역 전체 대리운전 콜이 시간당 1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요금이 비싼 장거리 콜도 급증해 대리기사들에겐 대목이다. 하지만 노쇼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이 대리기사들의 이야기다. 한 대리기사는 "노쇼가 2건 이상 나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며 "노쇼 손님을 피하기 위해 매일 도박을 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불러놓고 잠적하고, 중복 예약해놓고 나 몰라라

3년 차 대리기사 정모(49)씨는 지난달 말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사거리에서 대리요청 콜을 잡았다. 정씨는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손님을 태우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20분 만에 도착했다. 하지만 목적지인 논현동 골목의 한 술집 앞에는 대리기사 2명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이 정씨 말고도 다른 대리운전 업체 두 곳에 중복으로 예약한 것이다. 30대 후반의 남성 손님은 "(대리기사가) 평소에 제시간에 온 적이 없어서 여러 명 불렀다"면서, 대리기사들에게 "운전할 사람 한 명을 알아서 정하라"고 했다. 결국 정씨는 허탕을 치고 다른 대리 콜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리기사들이 말하는 '노쇼' 유형은 다양하다. 콜을 요청해 놓고는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는 '잠적형', 여러 대리기사를 동시에 부르고는 한 명을 고르는 '중복형', 기사가 도착한 뒤 서비스를 취소하는 '현장 취소형' 등이다.

이 중 대리기사들이 가장 꺼리는 유형은 '잠적형'이다. 나타나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물론, 기다리다 지쳐 자리를 떴다가는 나중에 "손님을 내팽개쳤다"는 막무가내식 항의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위약금 제도가 없는 대리운전 시장에서 손님은 '노쇼'를 해도 별 피해를 보지 않는다. 대리기사들은 웬만해서는 손님과 싸울 수 없다. 다음 손님을 받기에 바쁠뿐더러 "기사가 불친절하다"는 항의가 들어오면 회사로부터 일정 기간 콜을 받지 못하는 벌칙을 받기 때문이다.

대리기사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도 '노쇼 경험담'이 적잖게 올라온다. 대리기사가 나타나지 않는 손님에게 여러 번 전화했다가 "대리기사 주제에 왜 계속 전화해서 귀찮게 하냐" "억울하면 경찰서에 고소하라"는 등의 핀잔을 듣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전국대리기사협회 김종용 회장은 "노쇼를 일삼는 고객들에게는 일정 기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대리운전 업체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16&M=01&D=11&ID=201601110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