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2.18노쇼문화심각

RSVP안지키는문화"참석할게"해놓고 감감무소식 동창·동호회는'공포의손님'

예약 인원 절반도 못 채워…참석자 어림잡아 예약, 상당수 이런저런 핑계로 모임 펑크내기 일쑤

조선일보 발행일 : 2015.12.18 / 종합 A8 면 

"이러시면 곤란한데…."

지난 12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고깃집. 이 식당 매니저는 단체 손님 14명이 왔는데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들은 "미안하게 됐다"면서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널찍하게 앉자"며 테이블에 앉았다. 이 손님은 일주일 전쯤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한다며 25명 자리를 예약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모임에는 절반 가까운 11명이나 오지 않았다. 테이블을 이어 붙이고 칸막이까지 쳐 25인석 공간을 마련한 식당 측은 텅 빈 11자리를 놀릴 수밖에 없었다.

◇예약 인원의 절반가량이 노쇼

음식점 업주들은 "연락도 없이 예약을 깨는 '완전 노쇼(No-show· 예약 부도)' 손님 못지않게 예약한 인원보다 훨씬 적게 나타나는 '부분 노쇼'로 인한 영업 손실이 크다"고 말한다. 예약 인원에 맞춰 홀과 분리된 방을 배정하거나 테이블을 이어 붙여 단체석을 만들었는데 정작 예약 인원만큼 오지 않으면 빈자리는 고스란히 놀려야 하기 때문이다. 빈자리에 다른 손님을 받거나 좌석이 적은 방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손님들의 항의가 쏟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유의 '부분 노쇼'가 빈발하는 것은 단체 모임 손님들이 참석자 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림잡아 예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유럽·일본 등에서 기본 에티켓으로 자리 잡은 RSVP(참석 여부 회답) 관행이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한 고교 동기 모임 간사를 맡고 있다는 최모(41)씨는 "참석하겠다고 해놓고 막판에 못 가게 됐다고 하거나 모임 직전까지 참석 여부를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 많아 모임을 준비할 때마다 애를 먹는다"고 했다.

본지는 20~60대 100명을 대상으로 '모임에 가겠다고 해놓고 연락 없이 참석하지 않은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봤다. 그 결과 10명 중 7명이 지난 1년간 네이버 밴드나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모임에 가겠다'고 답변을 해놓고 정작 당일엔 참석하지 않은 적이 한 번 이상 있다고 답변했다. '참석하겠다고 해놓고 불참한 게 세 번이 넘는다'는 응답도 28%에 달했다.

◇참석 여부 답변 안 하거나 솔직히 말 안 하는 한국인

부산에 사는 이모(53)씨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밴드 앱에 '동창회를 열 예정이니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는 글이 올라오지만 답변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겠다'고 답했다가 못 갈 사정이 생기면 일일이 설명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이씨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모임은 일단 답변을 미뤄둔다"며 "당일에 급하게 가도 자리는 항상 남아 있다"고 했다.

지난달 장모(27)씨도 초등학교 동창 30여명이 가입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통해 '12월 초에 모임을 하려고 하니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장씨는 모임 당일 회사 야근이 잡혀 있었지만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모처럼 모이는 자리인데 나만 '바쁘다'고 하면 친구들에게 욕을 먹을 것 같았다"고 했다. 결국 장씨는 모임 당일 오전이 돼서야 "급한 일이 생겼다"며 핑계를 대고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본지 설문 조사에서 '참석이 어렵거나 불확실한 상황에서 참석하겠다고 답변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1%가 "다른 사람들이 다 간다고 하니 눈치가 보여서"라고 답했다.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혹시 취소될 수도 있어 중복해서 약속을 잡았다"고 답한 사람도 29%나 됐다. 또 모임에 불참하게 될 경우 '모임 당일에 통보한다'는 사람이 24%였고 '모임 한 시간 전쯤 통보한다'는 사람도 21%나 됐다.

이렇다 보니 동창회·동호회 등의 단체 모임 손님은 식당 업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서울 중구의 한 고깃집 주인 이모(42)씨는 지난달 중순 "고등학교 동창회 모임을 할 테니 60석 공간과 마이크, 스피커를 준비해 달라"는 예약을 받았다. 하지만 당일엔 절반도 안 되는 24명만 식당에 나타났다. 이씨는 "단체 모임 예약이 들어오면 테이블은 예약 인원수만큼 차려놓더라도 '부분 노쇼'에 대비해 음식은 30~40% 정도 적게 준비해두는 고깃집도 많다"고 했다.


☞RSVP

프랑스어 'Répondez s'il vous plaît(회답해주시기 바랍니다)'의 약어로, 영미권의 행사 초청장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표현이다. 행사 주최 측이 참석 인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초청장을 받으면 참석 여부를 답해주는 것이 기본 에티켓으로 자리잡았다.

출처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15&M=12&D=18&ID=2015121800162